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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산장려운동

    1920년대 조선에서 전개된 물산장려운동은 일본 제품 불매와 국산품 애용을 통해 식민지 경제에서 벗어나려는 민족 자조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자본력과 생산력에서 열세였던 조선 민중이 경제 주체로 거듭나기 위한 실천이었으며, 민족의식의 경제적 확장을 상징한다.

    1. 국산품 애용에서 시작된 민족경제 독립의 첫걸음

    일제 강점기, 조선은 정치적으로는 국권을 상실한 상태였지만, 경제적 침탈 또한 가혹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일본은 조선의 토지와 자본을 장악하였고, 조선 시장을 일본 상품의 소비지로 전락시키는 식민지 경제체제를 구축하였다. 조선 내 자본은 일본 상인과 기업에 흡수되었고, 조선인 기업가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며, 자립적 산업 기반은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조선 민중은 경제적 자립을 위한 새로운 저항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고,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물산장려운동'이다. 이 운동은 1920년 평양에서 조만식 선생을 중심으로 조직된 '조선물산장려회'에서 시작되었으며, 국산품을 애용하고 일본 상품을 배척함으로써 민족 경제의 기반을 세우자는 취지를 담고 있었다. 물산장려운동은 단순한 경제 캠페인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선인의 손으로 조선의 물건을 만들고, 그것을 조선인이 소비하자'는 경제적 민족주의의 실천이었다. 특히 조만식은 "산업은 곧 국방이다"라고 강조하며, 경제 자립이 곧 민족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점을 일깨웠다. 이 운동은 곧 서울, 대구, 광주 등지로 확산되었고, 각 지역에서도 지역 경제인을 중심으로 장려회가 조직되었다. 특히 학생, 여성, 종교인 등이 중심이 되어 국산 의류 착용, 국산 식품 소비, 국산 문구 사용 등을 실천하며 전국적인 민족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물산장려운동은 일제의 직접적인 정치 탄압을 피해갈 수 있는 비교적 합법적인 형태의 민족운동이었으며, 경제라는 일상의 영역을 통해 민족의식을 각성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는 조선 민중이 단순한 식민지 피지배자가 아닌, 경제 주체로서의 자각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2. 생활 속 실천 운동으로 자리 잡은 물산장려운동

    물산장려운동은 경제적 이념을 실천하는 데 있어 가장 ‘생활 밀착형’ 운동이었다. 이는 상류층이나 지식인만의 운동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일반 시민, 여성, 학생,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이 주체가 되어 확산되었다. 운동의 구호는 “내 물건 내가 쓰자”, “조선 사람은 조선 것을 쓰자”라는 실용적이고 쉬운 문구로 구성되어 있었다. 학생들은 일본에서 수입한 문구류 대신 국산 연필과 종이를 사용하였고, 여성들은 일본 옷감이 아닌 조선산 무명을 사용하여 옷을 지었다. 장터에서는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전개되었고, 국산 제품에는 '장려물산'이라는 인증이 붙여졌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조선의 전통과 자원을 살려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자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조선인 기업이 생겨났고, 실제로 섬유, 제과, 제분, 인쇄 등 분야에서 국산품의 생산이 활발해졌다. 특히 평양, 대구, 서울을 중심으로 민족 기업가들이 양재소, 방직공장, 제과점 등을 세우며 자본과 기술을 축적해 나갔다. 이는 단지 경제 운동이 아닌, 식민지 체제에서 민족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려는 실천이었다. 언론과 교육계도 이 운동을 적극 지지하였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주요 언론은 물산장려운동을 정기적으로 보도하고 캠페인을 조직하였으며,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국산품 사용을 권장하고 물산 장려 노래를 가르치는 등 문화적 확산도 병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은 일제 당국의 견제를 받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이 운동이 조선인의 경제적 자립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 고양을 통해 정치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우려를 품었다. 결국 장려운동은 탄압과 감시 속에서 점차 힘을 잃기 시작했고, 특히 일부 기업이 장려운동의 이름으로 상품을 고가에 판매하거나 질 낮은 제품을 유통하면서 신뢰성에도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산장려운동은 일제 강점기 조선 민족이 경제 영역에서 주체로 설 수 있었던 보기 드문 시도였으며, 이는 곧 독립운동의 확장된 형태로 기억되게 된다.

    3. 경제 주권을 향한 실천과 그 역사적 유산

    물산장려운동은 비록 전면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 역사적 의의는 대단히 크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라는 절망의 시대에 조선 민중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경제라는 실천 영역에서 찾으려 했던 소중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정치적 투쟁이 어렵고 무장 저항이 제한된 상황 속에서, 이 운동은 ‘살아남는 저항’이자, ‘일상 속의 독립운동’이었다. 무엇보다 이 운동은 국민 개개인의 실천을 통해 민족의식이 구체적인 사회경제적 형태로 전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단지 독립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민족의 경제를 자립적으로 유지하려는 실천적 자각이 확산되었으며, 이는 대한민국 경제 주권 사상의 토대가 되었다. 또한 물산장려운동은 이후 1930년대의 자치운동, 1940년대의 산업구국운동 등 다양한 사회경제 운동으로 계승되었고, 해방 후 한국 경제의 자립화 과정에서도 그 정신은 이어졌다. 특히 오늘날에도 ‘국산품 애용’, ‘지역경제 살리기’, ‘경제민주화’와 같은 담론에서 물산장려운동의 철학은 살아 있다. 결국 물산장려운동은 조선 민중이 경제적 주체로 자각하고, 자신의 손으로 역사를 바꾸려 한 ‘비폭력 실천운동’의 정수였다. 우리는 이 운동을 통해 어떤 삶의 방식이 진정한 저항이며, 또 어떤 자각이 진정한 독립을 이끄는지를 배울 수 있다. “조선 사람은 조선 것을 쓰자”는 그들의 외침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여전히 생생하게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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