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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말살정책과 창씨개명, 정체성마저 지우려 한 일제의 야욕
동글나라 2025. 4. 28. 19:00목차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은 한국인의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한 총체적인 동화 정책을 펼쳤다. 그 대표적 사례가 '민족말살정책'과 '창씨개명'이다. 이 글에서는 이 두 정책이 시행된 배경과 구체적인 방식, 이에 대한 민중의 저항, 그리고 오늘날 남긴 역사적 상처와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룬다.
1. 이름마저 빼앗긴 시대, 정체성의 사라짐
일제강점기의 말기, 특히 1930년대 중반부터 1945년 해방 직전까지는 한국 민족에게 있어 가장 혹독하고 절망적인 시기였습니다. 그 이전까지 일본은 문화통치나 회유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식민지 지배를 시도했지만,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일본 제국주의가 전쟁 확대를 추진하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일제는 조선을 단순한 식민지가 아니라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전쟁체제의 일환으로 편입시키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로 추진된 것이 바로 민족말살정책이었습니다. 민족말살정책은 단순한 억압의 차원을 넘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민족성을 철저히 지워버리려는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동화 정책이었습니다. 일제는 조선인을 일본 국민으로 만들어 전쟁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한국인의 언어, 역사, 문화, 종교는 물론, 심지어 이름까지 말살하려 들었습니다. 특히 그 상징이 되는 것이 바로 ‘창씨개명’이었습니다. 창씨개명은 일본식 성씨와 이름을 사용하도록 강요한 제도로, 한국인의 뿌리마저 지우려는 시도였습니다. 이 시기의 한국인들은 이름조차 지켜낼 수 없는 절망 속에서도 끊임없이 저항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끝까지 본명을 고수했고, 어떤 이들은 강제 속에서도 이름에 민족적 의미를 담는 방식으로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그 치열한 저항과 상처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남아 있으며, 우리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 민족말살정책과 창씨개명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행되었고,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를 살펴보며, 그 의미를 되새겨보겠습니다.
2. 문화적 말살에서 이름까지, 정체성을 겨눈 일제의 칼끝
민족말살정책은 일제의 식민지 통치 방식 중 가장 강압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일제는 조선을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이름으로 일본과 하나 된 국민으로 만들겠다고 주장하며, 한국인의 자주성과 고유 문화를 체계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정책의 중심에는 한국인의 언어, 역사, 종교, 교육 등 전방위적 통제가 있었습니다. 첫째, 언어 탄압이 극심했습니다. 한국어 사용이 금지되고 학교에서는 오직 일본어만을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국어 시간은 일본어, 국사 시간은 일본의 역사 중심, 학교의 이름도 일본식으로 바뀌었고, 조선어는 점차 교육과정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는 단지 언어 사용의 제한이 아니라, 사고방식 자체를 일본식으로 바꾸려는 시도였습니다. 둘째, 종교와 사상의 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불교와 기독교 등 기존 종교는 일본 신도(神道)에 종속되었고, 신사참배가 강제로 시행되었습니다. 이는 조선인의 신앙마저 일본의 이념으로 통제하려는 문화적 침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정책의 절정이자 상징이 바로 창씨개명이었습니다. 1939년 '조선민사령 제19호'로 공포된 이 제도는, 조선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한다는 형식을 띄었으나, 실제로는 강압적인 동원이 뒤따랐습니다. 창씨개명은 '창씨(創氏)'와 '개명(改名)'이라는 두 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창씨는 조선의 본성을 버리고 일본식 씨를 새로 만드는 것이고, 개명은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고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본래 이름이 ‘김영수’였다면, 창씨를 통해 ‘가네다’라는 일본식 성씨를 만들고, 이름은 ‘히데오’ 등으로 바꾸는 식이었습니다. 이는 조선인을 일본 국민으로 완전히 편입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심지어 관공서나 학교, 회사 등에서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거나 채용을 제한하기도 했습니다. 형식적 자유를 내세웠지만 실질적 강제였던 것입니다. 결국 1940년대 초반까지 약 80% 이상의 조선인이 창씨개명을 했다고 보고되지만, 그 과정은 심한 갈등과 고통, 저항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이름을 지키려 했던 이들 중 일부는 핍박을 받았고, 개명 후에도 가족과 주변으로부터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민족의 근간인 이름마저 빼앗긴 경험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정체성의 상처를 남겼습니다.
3. 역사적 상처를 딛고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과제
창씨개명은 단지 하나의 이름을 바꾸는 행위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수천 년 간 이어온 한민족의 역사, 가계, 문화, 정신을 단절시키는 폭력적인 행위였습니다. 이름은 개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이자 가문과 공동체의 뿌리를 드러내는 표식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창씨개명은 단순한 행정 조치가 아니라, 민족 정체성 자체를 파괴하려는 일제의 의도가 담긴 제도였습니다. 이름을 바꾼 이들은 해방 후 본래 이름을 되찾기도 했지만, 일부는 여전히 일본식 성명을 사용하거나, 혼란스러운 기록 속에서 본명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단지 과거의 개인사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의 역사 기록, 족보, 행정 시스템에도 혼란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신적 피해와 자존감 훼손, 문화적 단절의 상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단순한 피해의 기억으로만 남겨둘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를 통해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정체성과 자긍심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새겨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 글로벌 사회 속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 그것을 세계에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국가적으로도 이와 같은 역사를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며, 민족적 자존과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을 다져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역사 보존의 차원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정체성 교육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창씨개명이라는 비극적인 역사를 기억하는 이유는 과거를 탓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름 하나에도 깃든 민족의 정신, 정체성, 문화의 힘을 되새기기 위함입니다. 이 땅의 이름들, 그리고 그 이름을 지켜낸 이들의 의지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의 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