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회 창립과 조선 민족운동의 통일 전선 형성

신간회 창립과 조선 민족운동

1927년 창립된 신간회는 좌우 이념을 초월한 민족 유일당 운동의 구심점이었다. 일제 강점기 하 민족 독립과 사회 개혁을 동시에 추구하며 대중운동을 이끈 신간회의 활동은 조선 민중의 의식과 조직력을 성장시켰으며, 이후 독립운동 전개에 결정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1. 분열을 넘어 연대를 선택한 민족운동의 새로운 실험

1920년대 후반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더욱 공고화되던 시기였다.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환된 듯 보였지만, 이는 단지 지배 방식의 변화일 뿐 본질적으로는 민족 말살 정책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민족운동 진영 내부에서는 좌우, 계급, 지역에 따른 이념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고, 민중의 에너지는 분열된 세력 속에서 점점 흩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신간회(新幹會)'다. 1927년 2월 15일, 서울에서 창립된 신간회는 당시의 좌우 진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 지식인과 청년운동가들이 모여 결성한 최초의 전국적 규모의 '민족 유일당'이었다. 창립 선언문에는 “정치적·경제적 각성을 촉진하고,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민중의 생활 향상을 도모한다”는 3대 강령이 명시되어 있었으며, 이는 단지 항일운동을 넘어서 민족과 계급, 인권과 해방이라는 통합적 목표를 지향했다. 신간회는 단일 정당이나 정파가 아닌 ‘연합전선’의 형태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이고 진보적인 실험이었다. 특히 조선공산당이 일제에 의해 해체된 이후, 좌파 세력은 공식적인 활동이 어려워졌고, 이에 따라 사회주의자들은 신간회를 통해 대중운동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동시에 민족주의자들도 그들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노동자, 농민, 청년층과의 연대를 꾀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처럼 신간회는 분열된 민족운동 세력이 다시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도록 만든 역사적 접점이었으며, 조선 민중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연대’와 ‘참여’를 가능하게 한 운동장이 되었다.

2. 대중과 함께한 신간회의 전국적 활동과 한계

신간회는 창립 이후 급속히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1928년까지 전국 각지에 140여 개 지회를 설립하였고, 회원 수는 2만 명을 넘어서며 당시로서는 유례없는 대규모 민족운동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신간회의 활동은 크게 정치적 선전과 계몽, 교육 운동, 노동자와 농민의 권익 보호, 여성 해방 운동 등으로 다양화되었다. 신간회는 정기적으로 강연회를 개최하며 민중의 정치 의식을 고취하였고, 학교와 야학을 통해 무상 교육을 확대하려 노력했다. 또한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한 연설회, 토론회 등을 열었고, 어린이들을 위한 ‘소년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특히 노동자 파업과 농민의 소작쟁의가 발생할 때에는 신간회가 나서서 이를 지지하거나 중재하며 민중의 편에 섰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대한 대응이었다. 광주 지역의 학생들이 일본인 학생들의 폭력과 차별에 항의하여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자, 신간회는 이를 적극 지지하며 전국적인 확산을 도왔다. 이로 인해 신간회는 단지 지식인의 단체를 넘어서, 실질적인 민중운동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신간회는 내부의 이념적 갈등과 외부의 일제 탄압이라는 이중의 압박 속에서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 사이의 긴장은 조직의 일관된 노선 수립을 어렵게 만들었고, 일제는 이를 기회 삼아 지회 활동을 제한하고, 활동가들을 검거하며 조직의 결속을 약화시켰다. 결국 1931년 신간회는 스스로 해소를 선언하게 되었고, 민족 유일당 운동의 첫 실험은 짧은 기간 동안의 성과를 남긴 채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신간회의 해소는 그 자체가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조선 민중이 자발적으로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과정이었으며, 이후 좌우 합작운동과 독립운동, 나아가 해방 이후 통일운동의 사상적 근거가 되었다.

3. 신간회의 역사적 유산과 오늘날의 시사점

신간회는 일제 강점기 조선 민족운동사에서 가장 독특하고 진보적인 실험이었다. 좌우 진영이 서로 다른 이념을 넘어서 ‘민족’이라는 공통의 가치를 중심으로 연대한 것은 조선 현대사에서 보기 드문 사례이며, 이는 현재까지도 다양한 사회 운동과 정치 연대의 원형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 운동의 가장 큰 유산은 ‘통합’과 ‘참여’의 정신이다. 일제의 압박 속에서도 민족운동은 분열보다 연대가 더 강한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민중은 단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정치적 주체로 성장해 나갔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또한 교육, 노동, 여성, 농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민중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려 한 시도는, 단순한 이념 운동이 아닌 ‘생활 속 정치운동’의 전범이었다. 신간회가 남긴 교훈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사회가 갈등과 분열로 흔들릴 때, 우리가 다시금 되새겨야 할 것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용기'다. 신간회의 짧지만 강렬했던 활동은, 연대의 정치가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신간회를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조선의 독립운동이 단지 무장이나 외교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았음을 말해주며, 실천적 정치 운동이 어떻게 한 시대의 민중을 움직였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민족이 갈라지고, 사회가 분열되던 그때, 신간회는 ‘함께 사는 길’을 먼저 제시한 이정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