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오군란은 조선이 서구 열강과 일본의 압력 속에서 개항을 단행한 후 내부 모순이 폭발하며 일어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조선의 근대 정치, 외교의 전환점을 형성하며, 개항 이후 조선이 겪는 근대화의 충격과 갈등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1. 개항 이전 조선 사회의 변화와 외세 압력19세기 후반, 조선은 내부와 외부의 이중 압박에 직면해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세도 정치의 폐해와 농민층의 피폐, 양반 계급의 몰락, 지방 행정의 부패 등이 겹치며 사회 구조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외부적으로는 일본과 서구 열강의 본격적인 동아시아 진출이 조선을 향해 닥치고 있었으며, 조선의 폐쇄적인 쇄국 정책은 이러한 외세의 요구와 충돌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지도 아래 강력한 쇄국 정책과 척화주의 노선을 ..

흥선대원군은 조선 후기 세도 정치의 타락을 척결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쇄국 정책과 척화 사상을 고수하며 국제 정세의 흐름을 거부함으로써 조선의 근대화를 저해한 측면도 지닌 양면적 정치가로 평가된다. 1. 조선 말기 정치적 혼란과 흥선대원군의 등장19세기 중반의 조선은 안팎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세도 정치의 폐해가 누적되어 관료 조직은 무너지고, 국왕은 상징적 존재로 전락한 채 외척 가문에 휘둘리고 있었다. 행정과 군사, 경제는 피폐해졌고, 백성들은 가중된 세금과 부패한 관리들의 수탈에 지쳐 있었으며, 곳곳에서 민란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외적으로는 서양 열강과 일본이 동아시아에 영향력을 확대하던 시기로, 조선 역시 점차 개방 압력을 받는 상황에..

세도 정치는 왕권의 약화와 외척 가문의 권력 독점으로 조선의 정치·사회 전반에 구조적 부패를 야기한 체제였다. 이는 조선 후기 정치의 붕괴와 민생 파탄을 초래하며, 결국 외세 침입과 근대 개혁 실패로 이어지는 역사적 원인이 되었다. 1. 정조 이후 왕권의 약화와 외척 세력의 부상조선 후기, 정조의 개혁 정치가 막을 내리고 그의 아들 순조가 즉위하면서 조선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정조가 사망한 1800년, 순조는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국정은 자연스럽게 외척 세력에게 넘어갔고, 이를 계기로 ‘세도 정치’가 시작되었다. 세도 정치는 국왕의 혈연에 속한 외척 가문이 실질적인 정치 권력을 장악하며 정국을 좌지우지하던 체제를 의미하며, 대표적으로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의 세도가문이 수십 년간 정권을 ..

정약용은 조선 후기 실학의 중심 인물로, 학문을 통해 사회 제도를 개혁하고자 한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 그의 실학은 단지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 경제, 법률, 과학 등 다방면에 영향을 주었으며, 조선 후기 개혁 사상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1. 조선 후기 사회의 모순과 실학의 필요성조선 후기 사회는 여러 측면에서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겉으로는 유교적 명분 정치가 유지되고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붕당 정치의 폐해, 양반 중심의 신분 구조, 농민 착취, 부패한 행정 등으로 인해 사회는 점점 피폐해져 갔다. 성리학은 여전히 국가의 이념이었지만, 그 해석과 실천은 경직되고 현실과 괴리되었으며, 민생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에 봉착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실학’이다..
정조는 조선 후기 정치의 황금기를 이끈 군주로 평가된다. 그는 탕평책을 계승하면서도 실질적 개혁을 추진했고, 규장각을 중심으로 한 실학적 인재 양성은 조선 정치와 문화의 전환을 이끌었다. 그의 정치는 조선 후기 개혁 정치의 전범이 되었다. 1. 영조의 유산과 정조의 즉위, 새로운 정치의 서막조선 제22대 국왕 정조(正祖, 1752~1800)는 조선 후기 개혁 정치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는 영조의 둘째 아들이자 사도세자의 아들로, 왕실의 비극적 역사와 붕당 정치의 파란 속에서 성장하였다. 특히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은 정조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이후 그의 정치적 이상과 왕권 강화 전략의 중요한 기저가 되었다. 정조는 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인 개혁을 추진하며, 왕권 중심의 ..

영조는 조선 정치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군주로, 붕당의 폐해를 극복하고 국정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탕평책을 시행하였다. 그의 정치 개혁은 조선 후기의 제도 정비와 왕권 중심 통치 체제 확립의 기틀이 되었으며, 실용적 개혁 군주의 상징으로 남았다. 1. 붕당 정국 속에 즉위한 영조의 정치적 과제조선 제21대 국왕 영조(英祖, 1694~1776)는 경종의 이복동생이자 숙종의 아들로, 경종의 단명 이후 신임사화의 상처 속에서 조정의 극심한 정치적 분열 상태에서 즉위하였다. 1724년 즉위한 그는 무려 52년간 재위하며 조선 역사상 가장 긴 재위 기간을 기록하였고, 이 기간 동안 국정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개혁과 안정화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단순한 개혁의 연속이 아니라, 끊임없는 붕당 갈등 ..